2011/08/17 11:15
제작비 100억원의 `7광구`와 2억원의 `풍산개`. 두 영화는 공통점이 있다. 컴퓨터그래픽(CG)으로 만든 영화이고, 둘 다 모팩스튜디오가 CG작업을 맡았다는 점이다.

국내 대표 CG 회사인 모팩을 이끄는 장성호 대표(41). 그를 서울 논현동 모팩 본사에서 만났다. 그의 사무실엔 `스타워즈`와 `건담` 피규어가 빼곡히 차 있다. 복도 벽엔 `백 투 더 퓨처` `스타워즈` 등 이젠 고전이 된 영화 포스터가 촘촘히 걸려 있다.

`스타워즈` 포스터를 해질 때까지 넋 놓고 바라보던 초등학교 1학년 아이는 이제 국내 CG의 살아 있는 역사가 됐다. 장 대표의 열정으로 3D 블록버스터 `7광구`와 김기덕 사단의 `풍산개`가 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7광구` 때문에 2년간 몸무게가 17㎏이나 빠졌죠. 전부 처음 해보는 거라 고생이 많았어요. 괴물 크리처도 처음부터 새롭게 만들었고 촬영세트가 있긴 했지만 대부분 CG로 새로 그려 넣었죠. 물과 불 시뮬레이션은 동국대 영화영상학과에서 만든 엔진을 사용했어요."


 

`풍산개`를 함께 작업한 김기덕 감독과의 인연을 물었다.

"김 감독의 `섬` CG를 맡았었죠 `풍산개`는 상처받은 김 감독이 재기한다는 데 당연히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김기덕 홍상수 같은 감독은 한국 영화에 축복 같은 존재예요. 반대로 윤제균 김용화 같은 상업영화 감독도 대접을 받아야 해요. 다양성이 유지됐으면 좋겠어요."

모팩은 미국 드라마 `스파르타쿠스` 에피소드 다섯 편에도 참여했다. `스파르타쿠스`의 콜로세움 장면도 모팩 솜씨다. 장 대표는 "할리우드 스탠더드를 충족시킨다는 평을 들었다"고 전했다.

CG는 그에게 운명처럼 다가왔다. "처음엔 `백 투더 퓨처`를 그린 드루 스트러잔 같은 영화 포스터 아티스트가 되려 했어요. 그래서 (홍익대) 시각디자인학과에 갔는데 공부가 포스터 제작과 상관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뉴욕에서 공부한 형이 CG가 영화의 미래라는 말하는 것을 듣고 이쪽 일을 시작했죠. 대전 엑스포 기업관의 CG를 만든 뒤 3년간 광고계에서 일하다 창업을 결심했어요. 1994년 말 처음 회사를 세울 때 주변에선 쪽박 찬다고 말렸죠. 하지만 영화로 돈이 안 벌려도 좋았어요. 여기까지 온 건 운이 좋았기 때문이에요. 한국 영화가 활발하게 제작되지 않았다면 모팩도 불가능했을 테니까요."

장 대표는 스탠리 큐브릭과 데이비드 린치 감독을 좋아한다.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독창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큐브릭 감독의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는 모든 장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외우고 있을 정도다.

"박사과정 때 단편 2편을 감독한 적은 있어요. 그때 감독은 누구나 될 순 있지만 아무나 돼선 안 된다는 걸 알게 됐죠. A급 감독이 안 되면 A급 스태프가 되자고 결심했어요."

그는 CG의 미래가 곧 영화의 미래라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 CG산업의 미래를 밝게 내다봤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도 `앞으로 영화 촬영 현장은 소스 캡처하는 곳에 불과할 것`이라는 말을 했어요. 장기적으로는 애니메이션과 실사의 구분이 거의 사라지겠죠. 얼마 전 KAIST에서 만든 3D솔루션을 썼는데 계속 발전시키면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 없는 수준이 될 겁니다."

[박대민 기자 / 사진 = 박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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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원인치공격
2011/08/16 15:51


세상에 'PC'라는 기계가 첫 선을 보인지 30년만에 저장용량은 300만배, 메모리 용량은 50만배 늘어났고 중앙처리장치(CPU)의 성능은 700배나 늘었다.

PC가 일반인에게 보급되면서 세계는 디지털 혁명을 일으켰다. 손으로 작성하던 대부분의 문서는 PC로 만들어져 자유롭게 복사되고 인터넷을 따라 전파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PC가 30년간 만들어낸 업무 효율성은 300만배 이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개인용 컴퓨터의 효시가 된 IBM PC가 12일로 탄생 30주년을 맞았다. 개인용 컴퓨터 시대를 열어놓은 IBM PC는 인류의 생활과 산업계에 커다란 진보를 가져온 혁명으로 평가된다. 오늘날 개인용 컴퓨터의 대표명사로 쓰이는 'PC'라는 이름도 IBM PC 5150의 이름에서 유래됐다.

■PC 탄생 30년 디지털 혁명 효과는 300만배 이상

최초의 PC인 IBM PC 5150은 CPU 16비트 4.77㎒, 메모리 40pH에 13.33㎝(5.25인치) 160pH 플로피디스크 드라이브를 탑재할 수 있었다. 오늘날 업무용 일반PC의 CPU가 64비트 3.3㎓, 메모리 2?, 저장용량 500?대임을 고려하면 30년 만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셈이다.

IBM PC가 개발되기 20년 전인 1960년대만 해도 컴퓨터는 1000㎡의 넓은 공간에 운영인력이 60명이나 필요한 대형 기계였다. 구매비용도 9백만달러에 달했다.

1981년 8월 처음 선보인 IBM PC 5150은 책상위에 올려 놓을 수 있을 만큼 작아져 대중화의 기반을 만들었다. PC가 첫 선을 보이던 당시 가격은 소형 자동차 1대 가격대인 1565달러였다.

30년만에 PC는 100만원대로 소형자동차 가격의 10분의 1 수준으로 저렴해졌다. 이 덕에 최근에는 세계 주요 국가에서는 집집마다 PC를 1대 이상 갖게 됐고, 문서 작성이나 계산 뿐 아니라 교육, 은행업무 처리 등 사실상 못하는 일이 없을만큼 생활상을 바꿔놨다.

■국내·외 컴퓨터 산업에 큰 영향

IBM이 PC를 통해 기존 컴퓨터시장에 개인용 컴퓨터 바람을 일으키면서 관련된 산업도 급속히 성장했다. PC에 CPU를 공급한 인텔은 PC 개발 당시 매출이 8억달러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인텔의 매출은 300억 달러를 기록해 29년만에 매출이 37배나 늘었다.

PC의 운영체제(OS)를 개발한 마이크로소프트는 소프트웨어 산업이라는 새로운 대중적 산업을 만들어 냈다.

국내에서는 삼보컴퓨터의 전신인 삼보전자엔지니어링에서 일본제품을 재조립한 국내 최초의 PC SE-8001을 1981년에 선보였다. 1983년 4월에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가 마이티 컴퓨터를 개발하는 등 삼성반도체통신, 대우전자 등 주로 대기업에서 PC 생산에 참여했다. 1984년에 IBM PC 호환기종이 도입되면서 개인용 PC시대의 불을 당겼다.

1990년대 세계적인 추세에 발맞추어 팬티엄 기종이 국내시장을 주도했으며 이제 한해 판매대수도 300만대를 넘어서고 있다. 국내 가정에 보급된 PC는 1000만대로, 3가구당 2가구가 컴퓨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PC는 지난 20여년전 인터넷과 결합하면서 전세계를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냈다. PC와 인터넷의 결합은 그야말로 제2의 산업혁명이 됐다.

최근 컴퓨터는 무선인터넷·스마트폰으로 빠르게 흡수되면서 스마트 모바일의 새로운 산업으로 발바르게 전환하고 있다.

정보기술(IT) 전문가들은 스마트 모바일 혁명은 앞으로 3년안에 PC가 30년간 이룬 발전보다 많은 발전을 이룰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lkbms@fnnews.com임광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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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원인치공격
2011/08/12 12:49




삼보컴퓨터에서 진행중인 스마트체인지업 노트북 지금 삼보에서 진행하고 있는

이벤트인데요 노트북을 구매하는 사용자에게 상당히 도움이 되는 스마트체인지업

행사를 8월까지 진행하고 있는데요

 

 



방학기간에 노트북 구매 예정자들에게 상당히 호응을 많이 얻고 있죠~~~

스마트체인지업 이벤트가 노트북을 구매하고 2년뒤에 노트북을 삼보에 반납을

하게 되면 노트북 구매가격의 50%를 다시 현금으로 돌려주는 행사여서

구매자 입장에서는 혜택이 좋죠~~~


노트북이라는게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가격이 떨어지게 되는건데

나중에 중고로 처분하기도 개인이 하기엔 어려운게 사실이죠

삼보에서 50% 가격을 보장해주면서~~ 반납을 할수 있으니까


노트북을 신형으로 교체하거나~ 현금이 필요할경우 노트북을 반납하면

되니까 나중에 상당히 효과적이죠~~~


노트북 구매할때 사은품도 4가지 주고 후기 쓰면 모니터도 공짜로 준다고

하니까~ 잘 활용하면 좋은 기회죠~~~~


HD 화질의 노트북이니까 영화나 게임하기에도 좋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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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원인치공격